Carmen Cygni

혹은 모래사장을 품은 백조.

청록학교 지도교사 구██

그제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감상은 들지 않았다.

단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조금 강했을 뿐이었다. 스완은 짐짓 미간을 찌푸렸다. 눈이 부시다, 그 이상의 감상은 역시 들지 않았다. 구태여 덧붙이자면 열기가 거슬린다, 정도일 테다. 머리가 뜨겁지는 않았다. 차게 식었다면 모를까. 그래도 조금은 더운지 목덜미에 온기가 느껴졌다. 땀은 나지 않았다.

흥이 죽었다, 가 역시 올바른 표현일 터였다. 항상 그러했으니까. 격정적으로 끓기보다는 죽은 성냥처럼 차갑게 식어 한없이 평온한 마음. 되려 살기를 품는 행위 자체가 의식적이고 귀찮은 것이었다. 무언가를 죽이는 데 살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죽이려면 죽이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마치 갓난아이가 별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그런 사뭇 무료한 마음가짐으로 스완은 눈앞의 형체를 마주했다. 다만 똑같이 무료한 마음가짐으로 막 수업을 끝마친 아이들에게는 퍽 충격적인 광경이었던 듯하다. 하기사 스완 본인도 미리 통보받지 못했더라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었다. 혹은 그런 척이라도 해줄 수는 있었겠지. 그래, 그런 척이라도 해주자. 너는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그러면 너는 짐짓 방심할 테고, 나는 최소한 보람은 느낀 채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해 그 이상의 감상은 들지 않는다. 필시 너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내게 그런 말을 했을 터다. 적어도 이런 곳에서 너를 발견한 건 다소 의외였다. 의외, 그 정도로 너는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스완은 어느새 우글우글 몰려든 학생들을 평소의 태도로 타이르며 차차 소란을 잠재워나갔다. 방아쇠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당기는 게 더 편할 테니까. 아이들의 감상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다만 그 감상이 사뭇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번지고야 말 것이었기에, 그렇기에 스완은 아이들을 타이르며 교실로 돌려보냈다. 너도 아이들 앞에서 방아쇠가 당겨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겠지. 최소한의 배려였다. 동료로서의.

그리고 친구로서의, 라고 곱씹어 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다. 원한다면 위로나 사과라도 해주겠다. 내가 앞으로 너에게 할 행동에 대해. 하지만 넌 역시 원치 않겠지. 이해는 한다. 허나 그 이상의 감상은 들지 않는다. 햇살이 조금 눈부시나. 눈부신 것 같다.

아이들의 짙은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형체는 보다 명확하게 스완의 망막으로 맺혀왔다. 햇살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훨씬 짙고 어두웠다. 그러한 그림자 수십 개가 뭉쳐 너를 덮친 광경에도, 그다지 특별한 감상은 들지 않았다.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볼만한 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차디찬 바닥에 맥없이 쓰러져있는 너에게서는 그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미약한 호흡을 스완은 느낄 수 있었음에도 남자의 새하얀 피부와 한쪽 뺨을 가로지르는 흉터는 산 사람보다 시체와 더 근접한 인상을 주었다. 얼마나 오래도록 이러한 상태였는지는 스완도 알지 못했다. 적어도 내가 발견하기 훨씬 이전까지도 너는 혼수에 빠져 이리 썩고 있었을 것이다. 전날 밤 꿈에서 내게 일러준 것처럼.

구재현은 그런 인상의 소유자였다. 장신에 새하얀 피부, 무뚝뚝한 얼굴과 큼지막한 선형의 흉터. 온화하면서도 험악한 인상, 그것이 구재현을 잘 아는 사람들이 남길 만한 평가였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험악한 인상에서 온화함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테다. 덕분에 구재현은 학교에서도 유독 인기가 많은 교사 중 한 명이었다. 스완보다 오래 학교에 근무했던 것도 한몫했을 터였지만, 분명히 아이들은 그를 잘 따랐고 그 또한 항상 최선을 다했다. 웃는 게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늘 환하게 웃어주었다. 너는 분명 그런 사람이었다.

몸뚱이만 남아 나뒹구는 너를 보았을 때 아이들이 그토록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이해는 되었다. 이해만 되었다. 때문에 나 역시 걱정하는 척을 해주었다. 실토하자면 햇살이 여즉 거슬린다는 것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햇살보다도 너에게 더 관심을 주었던 것 같다. 이해는 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공감해 주며 잘 타일러주었다. 구재현 선생님은 괜찮을 거라고. 별일 없을 거라고. 역시 나는 진실보다도 거짓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뿐이다. 이제 너와 나만이 남았고, 사냥개에 봉착한 사냥감의 운명은 으레 변하는 법이 없다. 친히 제 위치를 털어놓으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은 사냥에 대한 모욕이었으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되려 수업이 한창이었기에 이곳에는 나와 너뿐이다. 혹은 재단과 너. 어쩌면 세상과 너였을 수도. 너는 이제 혼자 남게 되었다. 너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연민은 없다. 너와 나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청록학교 지도교사, 수면변칙부 2등급 연구원, 그리고 기동특무부대 오미크론-로 부대원. 재단에서 너는 이 세 수식어로 정의된다. 나 역시 너를 정의하는 데 있어 이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너무 서운해하지는 않길 바라, 내가 이리도 무감정한 까닭은 결국 너를 위해서니까. 죄책감은 느낄 수 없을지언정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완은 문득 역정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기적인 놈. 내가 못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를 이리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너 역시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아니,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알았기에 전날 밤 꿈에서 그런 표정을 지었을 테다. 두 못된 사람이 있었음을 알았기에 너는 그리 말했다. 그리고 지금의 너를 보아서야 나는 너의 말을 이해했다.

잠시 작별 인사를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떠오르는 말은 없었다. 어젯밤 나누었던 만담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너는 만족했다고 했었지만, 그러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딱히 뭘 더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필시 너도 알고 있었기에 일찌감치 포기한 것일 테다. 나는 분명 어울려주겠다 했었고,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너는 그 부분에서 실망한 모양이었다. 그 부분만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해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스완은 덤덤히 잠긴 문을 확인하고, 방음 결계를 구축하고서, 다시 식물상태의 구재현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품에서 꺼낸 권총을 이마에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훗날 스완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다. 밈 공격을 동반한 격렬한 저항으로 총격을 가할 수밖에 없었음.

스완은 잠시 제 다리를 이룬 의족을 주물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왜인지 좀이 쑤시는 것 같았다. 그 이상의 감상은 들지 않았다.


-1일

Poco a poco moderato.

구재현의 실종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몇 주 전, 놀랍도록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겨울 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다름 아닌 구재현 본인에게 있어서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마지막 SCP-575-KO 실험 이후 구재현은 거듭, 사뭇 필사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외였다. 그가 품은 재단과 장막에 대한 회의감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신뢰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무언가를 털어놓는 것보다 숨기는 게 더 힘든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그토록 아이들을 위했던 그가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끊어낸 것은 정말로 의외였다. 절대로 놓지 않을 것만 같았으니까.

놓기는커녕 끊어버렸다. 인지했을 뿐 당연히도 그 이상의 감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네 안에서 무언가 죽은, 혹은 태어났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친구로서의 대화는 그날 이후로 일방적으로 끊어졌으니까. 네가 학교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처럼.

네가 기동특무부대 오미크론-로에 자진했을 때, 사람들은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사건의 트라우마로부터 회복되었다고 했고, 변칙 개체의 밈적 인자로부터 벗어났다고 했다. 사람들은 너의 회복 탄력성에 감탄했다. 그날이야말로 네가 재단에서의 모든 미련을, 어쩌면 거의 모든 미련을 끊어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PoI-5335를 쫓는 임무에 배정됐어. 우리가 쫓는 게 그 사람이라는 건 아직 나밖에 모르지만…"

"이야, 입대 첫날부터 아주 열정적이셔? 구재현이 드디어 흉터 값 하는 건가?"

"하하, 위대하신 스완 요원님 다리 값에는 못 미치지."

"아무렴, 아무리 친구라 해도 이 다리는 못 준다고. 흑심 접으세요, 구재현 씨."

구재현은 피식 웃어보이며 스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재현의 입대 기념으로 친한 직장 동료들끼리 술이나 한잔 걸치자 제안한 것은 스완이었다. 그러나 재현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며 스완과 단둘이 마시기를 원했다. 스완은 수락했다. 특별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므로.

"PoI-5335… 역시 그 사람이지? 루카 첼레스테. 태희네 오빠와 사제지간이었던."

"태강 학생. 응. 격리 당시 몽환계로 접촉한 모양이야."

"뭐 가르쳤대? 종교?"

"아니, 첼로."

스완은 조용히 술을 홀짝이는 재현을 응시했다. 유독 말이 없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었다. 물론 너는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그리도 티를 내면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와는 여즉 상관이 없었기에 구태여 언질을 주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재현은 눈부신 햇살을 피하려는 듯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는 유독 햇살이 많이 비치는 자리였다.

너는 항상 일방적이었다. 일방적으로 마음을 품고 일방적으로 포기해 버린다. 물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 어떠한 감상도 들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좋았기에 같은 처지의 친구로서 입지는 굳어졌다. 그 입지는 훗날 네 삶에서 재단이라는 이름의 덩어리가 도려내질 때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사냥감과 사냥개. 그 때가 지금 이 순간 바삐 박차를 가하며 달려오고 있음을 스완은 인지했다. 그 때를 마주하는 날, 스완은 일말의 아쉬움을 끝으로 더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애는 어린 시절을 통째로 빼앗긴 거네. 격리실 바닥에서."

재현은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스완은 더더욱 재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그가 품은 말의 개수가 둘이라는 것 정도는 오래도록 알고 있었으며, 개중 가장 오래된 선언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것임을 스완은 알고 있었다. 너의 선택을 이해한다. 허나 그 이상의 감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 떠날 거야?"

떠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라고 너는 반문하지 않는다. 머치 사전에 정리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말없이 술잔을 비운다. 사냥감과 사냥개의 관계로 퇴보하는 것을 너는 분명 원치 않을 것이다. 너는 되려 그 이상의 관계를 원했으니까. 그럼에도 너는 최소한의 미련만을 남겨둔 채 침묵한다. 어찌 되었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곧."

그리고 이것이 내 역할일 테다.

"원한다면,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어. 저번 SCP-575-KO 사태 정도 규모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리하여 너는 내게 실망한다. 침묵에는 어느새 비릿한 환멸의 내음이 배어나고 있었다. 목적을 잃은 극단에 환멸을 느낀 너였기에 너는 내게 실망한다. 오랜 시간 타인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너는 장막의 형태로 변모한 극단에 몸을 파묻었다. 마땅히 알 권리를 박탈해 그들이 스스로 지킬 수 없게 했고,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멱을 따 괴물의 먹이로 주었다. 마침내 타인을 감옥에 가두어 그들의 삶을 철저히 유린하고 나서야 괴물은 다름 아닌 우리였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나는, 동일한 명분으로 극단의 품에서 떠나려는 너의 의지를 정면으로 모욕한다. 타인을 해함으로써 네가 타인을 돕도록 해주겠다, 라는 모순과 극단을 입에 담는다. 내 입에 담음으로써 네 최후의 미련을 끊어주었다. 이제 너는 떠나갈 수 있을 것이고, 햇살은 다름 아닌 내게로 고개를 돌릴 테다.

그러면 나는 눈이 부시다는 것 외에 그 어떠한 감상도 들지 않을 것이다. 않는다, 가 정확한 표현일 테다. 몇 주의 시간이 말마따나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스르르 흘러가고야 말았음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위선과 위악이 사냥감과 사냥개로 바뀌는 시간. 한낱 모래처럼 무의미한 그 시간 속에서 스완은 그 어떠한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한 걸음 덜 내디뎠을 뿐이었다. 네가 멀리, 더욱 멀리 떠나갈 수 있도록. 달아날 시간을 조금 쥐여주는 것, 그것이 단순 변덕임을 너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밤, 변덕이 끝나감을 직감했을 무렵 스완은 꿈을 꾸었다. 말라버린 해변의 모래사장을 거니는 꿈이었다. 어둑한 새벽이었음에도 스완은 햇살이 눈부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선명한 백조자리가 흐릿한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구름은 사냥감과 사냥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결국 멀리 떠나가지는 못했구나. 발자국 소리. 스완은 잠시 어떤 모습을 연기해줘야 할지 생각했다.

"안녕."

역시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는다.


-1시간

ㅁㄴㅇㄹ


저는 겨울이 좋습니다. 제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거든요.

말마따나 그건 환상통이다.

성실한데 열정이 없어. 뭐든 쟁취하려 하기는커녕 쉽게 포기해버리지.

사랑을 동경하는 내가 역겨워서


오늘의 음악 — Bonjour Madame (찰리 채플린) / Thumbs (사브리나 카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