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452-KO
격리 등급: 안전
위협 등급: 녹색 ●
특수 격리 절차: SCP-452-KO는 제45K기지에서 선별한 인원이 관리한다. 격리를 담당하는 인원만이 물체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격리에 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담당자에게 있다. 실험 요청은 격리이사관보 주수현에게 보고하며, 주수현과 격리 담당자 모두의 동의가 있을 때 실험이 가능하다.
SCP-452-KO의 제작자들은 현재로선 이상 행동의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으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1급 감시 상태를 유지한다. 이 감시 또한 격리 담당자들이 전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설명: SCP-452-KO는 소나무로 된 직육면체 상자로, 크기는 10×7×3cm다. SCP-452-KO는 물리•화학적 손상에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내구성을 보이나, 파괴가 불가능하진 않다.
SCP-452-KO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뭇잎(SCP-452-KO-1)이 있다. SCP-452-KO에 일반적인 식물의 잎(풀잎 포함)을 넣었다 빼면 그것도 SCP-452-KO-1이 된다. SCP-452-KO-1은 경도가 상당히 떨어지지만, 인장 강도와 점성이 크게 상승해 손으로 다루며 서로 붙이기 용이해진다. 생화학적 변화는 달리 없으며, 외부 요인으로 어느 정도 이상 변질될 경우 변칙성을 잃는다.
SCP-452-KO-1을 이용해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한 구조를 성형한 다음, 창작자가 완성했음을 뜻하는 발화나 몸짓을 보일 경우 해당 객체는 움직인다. 여러 사람이 제작에 관여했다면 직접적인 기여를 한 인물은 모두 창작자로 취급된다. 모방을 목적으로 제작한 객체는 허술하게 만들어도 스스로 창작자가 모방하고자 하는 것에 최대한 가까운 형태로 변형해 작동한다.
활성화된 객체는 허공에서 물체를 생성해낸다. 생성되는 것엔 자율적인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일관성은 없다. 이후 객체는 생성해낸 물체를 활용해 그 형태와 구조를 지닌 개체라면 으레 할 법한 행동을 하며,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객체를 만들어냈을 경우 가능한 행동을 무작위로 한다. 주변에 다른 물체가 있을 경우, 생성해낸 것과 함께 활용하는 경우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객체는 별다른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으며, 행동 자체는 미리 주입된 것을 주변 맥락에 맞춰 시행한다. 활성화된 객체는 행동이 마무리될 무렵에 언제나 무력화되며, 대부분의 경우는 흔적을 최소화한다. 이후 SCP-452-KO 위에서 문구가 비물질적인 시청각 정보로 떠오르는데, 제작자들이 직접 넣은 기능은 아니다.
SCP-452-KO는 SCP-662-KO(이후 이한령으로 지칭)와 당시 제45K기지 연구과 보조 연구원이었던 김나진의 보고로 존재가 확인됐다. SCP-452-KO를 제작한 인물들은 박현, 박산주, 한건영 세 사람으로, SCP-662-KO-1과 유사한 백색 구체의 소유자들이다. 이한령과 세 사람의 관계 및 이한령이 SCP 재단 외부계약인원으로 활동하게 된 자세한 경위는 SCP-662-KO 문서를 참조할 것.
이한령은 격리에서 해제된 뒤 제작자 3인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자주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 22년 5월 1일 김나진이 동석한 자리에서 재치를 발휘해 한건영의 구체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해당 구체를 연구한 결과 당초 예상보다 발휘할 수 있는 힘의 강도나 총량이 약했는데, 이에 SCP-662-KO-1의 사례같은 추가적인 변칙성 발현 또는 구체를 과용할 만한 사건을 의심해 이한령에게 제작자들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다음을 참조할 것.
날짜는 2022년 6월 3일, 위치는 진주시에 있는 제09K기지 소유 사무실. 신속한 소통을 위해 고른 해당 장소에서 김나진이 턱에 손을 괸 채로 기다리며, 곧 이한령이 들어온다. 김나진은 연구 결과를 빠르게 요약하고, 이한령에게 해야 할 일을 알린다.
이한령: 이거 진짜예요?
김나진: 아니었으면 안 불렀죠?
이한령이 이마에 손을 얹고 신음을 낸다. 이내 고개를 들고 수긍한다.
이한령: …어차피 제가 안 맡으면 재단이 직접 나서는 거죠? 저는 돈도 안 들기도 하니까.
김나진: 잘 아시네요. 일단 다른 두 사람 구체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뭐 일단은 정기 근황 보고 정도면 충분해요. 아마- 큰 사건에 휘말린 건 아닐 거예요. 그랬으면 일주일에 두세번 같이 술 마시는 건 못 하죠. 구체 자체에 변칙성이 생긴 거면- 그러면 또 한령 씨한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뭔 일이든 아직까진 가능성만 있는 정도니, 천천히 해도 좋으니까 안전에 신경써주세요.
이한령: 네. 그런데 다른 가능성은 없나요? 전에도 보신 것처럼 이 구슬들이 주인 말고는 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주인인 건영이가 없으니까 제대로 힘을 못 낸다든가.
김나진: 저희를 뭘로 보시고. 그런 건 이미 다 고려하고 결론을 내는 거예요. 그래도 좀 이상한 것들이 있긴 한데요. 이게 성인 되고 나서는 이한령씨보다 제가 그 세 사람이랑 더 오래, 자주 봐 왔잖아요? 그런데 그동안에도 딱히 별 일은 없어 보였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만나기 전에 뭐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그럼 근래에 이렇게나 힘을 많이 쓴 일이 있던 건데… 역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변칙성이라 봅니다. 지리산에 위험한 변칙 개체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기억하시죠? 그런 거랑 비슷한 일 생길 수도 있어요. 또 하는 말이지만 꼭 조심하세요.
이한령: 암요. 당연히 그래야죠. 근데 진짜 더 걱정되네요. 뭔 변칙성 같은 게 생긴 거라고 치기엔 세 사람 다 그리 큰 걱정이 없어 보이는데, 딱히 정신조작은 없으셨다 했으니… 이러면 그냥 단체로 맛이 갔든가, 아니면 변칙성이 있는데도 모른다? 당분간은 신경 쓰여서 잠 제대로 못 자겠는데요. 그래, 뭐. 열심히 할 테니까 믿고 맡겨주세요.
기록 끝
이한령과 김나진이 SCP-452-KO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확인한 것은 6월 9일로, 제작자들이 대상을 만들고 시험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물에 두 사람을 직접 초대하였다. 이는 6월 7일 가진 술자리에서 성사된 일로, 우선 술자리 기록을 첨부한다.
약속 시간 30분 전, 이한령이 휴대전화를 보며 약속 장소인 술집 앞에서 서 있는다. 김나진이 이한령을 발견하고 부른다.
김나진: …언제부터 있으신 거예요?
이한령: 오시기 직전부터요.
김나진: 진짜죠? 막 누가 오든 먼저 와 있도록 한 그런 거 아니죠?
이한령: 뭔 소리래요, 말 그대로인데. 세 사람도 일찍 오니까 빨리 어떤 식으로 내뱉게 할지 얘기 해놓아야죠.
김나진: 솔직히 저는 오히려 있는 게 방해 아니에요? 세 사람은 아직도 제가 재단은 커녕 초상 사회 일원인 것조차도 모르고 있는데.
이한령: 그간 세 사람 김나진 씨랑 얘기하면서 은근히 흘려온 헛소리 많다면서요. 모른 척 넘어가셨으니까 오히려 마음 더 마음 놓고 있을 수도 있죠. 애초에 다른 사람 다 있는 가게에서 대놓고 얘기를 하게 만들 생각인 건 아니니까요?
김나진: 음- 저는 일단 술 마시면서 적당히 빌드업 하다 돌아가는 길에 딱 대놓고 말하게 하는 그런 느낌으로 생각했거든요. 적당히 생각해 뒀던 내용도 있었는데- 그래, 그럼 서로 생각한 걸 섞어 볼까요? 운 좋게 이번 한 번에 실체를 밝힌다면 그것도 좋은 거죠.
김나진과 이한령이 서로 생각해 둔 계획을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제작자들이 도착해 두 사람에게 인사하며 합류한다. 다섯 사람은 술집으로 들어가 음식을 시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건영: 한령이랑 나진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 같네? 너희 처음에 다같이 밥 먹을 때는 그렇게 공기가 어색할 수가 없었는데.
김나진: 하하… 내가 낯을 좀 가려야 말이지. 너희 처음 찾아가려던 날에도 청심환 한 알 삼키고 갔었잖아.
김나진과 이한령이 면식이 있는 것을 숨기기 위해 세 사람 앞에서 연기한 것과는 별개로, 김나진은 실제로 약한 수준의 대인기피증이 있다.
이한령: 오, 나왔다. 배고팠는데 많이 먹어야지-
맥주 다섯 병과 함께 옻닭, 닭도리탕 한 냄비 씩이 상에 놓인다. 각자 고기를 그릇에 덜어 먹으면서, 술을 잔에 따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식당은 사람들이 점차 들어차며 소란스러워지고, 술로 얼굴이 벌개진 다섯 사람도 이에 목소리를 점차 높이며 기분을 고양시킨다.
박현: 크- 좋다, 좋아. 요즘 바빠서 이럴 일도 잘 없었는데, 한령이랑 나진이도 바빠 가지고, 그래 한 달쯤만인가?
김나진: 바쁘다고요? 누님 요새 한창이던 프로젝트도 슬 마무리 단계라 하지 않았나?
박현이 혀를 살짝 차며 손가락을 흔든다.
박현: 사람이 본업만 하고 살아갈 수 있나? 내가 말하는 건, 막 그리 간단한 게 아니야.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지만- 여튼 그렇다고. 뭐, 이거, 건영이도 이거 때문에 바빠서 결혼도 취소하고-
한건영: 아니, 언니! 뭔 소리 하는 거야 진짜.
박산주: 그래, 누나. 그것도 있긴 한데 코로나 때문에 하객 못 와서 그런 게 더 크잖아. 게다가, 취소도 갑자기 된 거라 건영이도 시무룩해하고 있고. 누나는 그런 계획 세울 일 없다고 그러는 거야?
박현이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박산주의 앞머리를 잡아당기며, 주위의 시선을 끌어모으진 않을 정도로 소리친다.
박현: 새끼! 누나한테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랬지. 그런 걸로 긁는 거 아니다 진짜.
이한령: 언니도 참… 여전하구나.
박현: 아니, 한령이 너까지! 너 중학교 졸업한 이후로 우리 연락하고 지낸 시간 다 합쳐도 4달도 안 되는데…
한건영: 내 참, 언니. 집착하면 있던 것도 떠나가는 거라니까. 애초에 사내연애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고. 동호회에 괜찮은 사람들 좀 있다지 않았어?
박현: 에이, 시발. 진짜로 겉보기만 괜찮더라. 그냥, 망할 여미새뿐이야! 진짜 좀 기회 있나 싶은 놈들은 다 구멍만 있으면 들어가고부터 하려는 놈들 뿐이고, 좀 멀쩡하다 싶으면 진지하게 취미만 딱 즐기러 온 사람이든가 아니면 이미 있든가… 그냥 진작부터 소개팅 좀 하고 다녀야 했나? 맨날 자만추 노래만 부르지 말아야 했어-
김나진: 진정 좀 해요 누님. 어차피 요즘 젊은 세대는 슬슬 한 번도 안 만나본 사람 늘어나는 추세예요.
김나진이 박현과 열띤 논쟁을 벌이며 이한령에게 눈치를 준다. 술로 정신이 흐트러진 지금이 정보를 캐낼 좋은 기회란 뜻이다. 이한령이 일부러 김나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한건영에게 말을 건다.
이한령: 건영아, 한 달 전에 빌려줬던 구슬 있잖아. 혹시 돌려받고 나서 뭐 이상한 건 없었어?
한건영: 응? 글쎄다. 별 거 없었을 텐데. 잠깐, 그러면 한령이 너 구슬 쓸 수 있는 거야? 남의 거인 데도?
이한령: 당연히 쓰지는 못하고, 내가 빌릴 때 말했잖아. 나준이 거랑 비슷하게 나한테 반응하는 거 있나 함 본다고. 이게 참 뭐가 느껴지긴 하던데, 이상하게 나준이 것보단 약한 느낌이더라. 내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 거일 수도 있지만은, 혹시나 구슬 자체에 뭐 다른 게 있는 걸까 해서.
이한령을 격리에서 해제하며 만들어낸 역정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이한령은 지리산을 등반하던 중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고 남원시까지 방황하다 발견됐으나, 신원을 증명할 만한 물건을 모두 잃어버려 (재단이 운영하는)병원에서 지내왔다. 추가로 제작자 3인에게만 적용하는 역정보로, 이때 김나준에게 받은 구체(SCP-662-KO-1)가 조난당한 이한령을 지켜주고, 더 나아가 병원에서 지내던 이한령의 기억이 조금씩 회복되도록 해주고는 부서졌다.
한건영: 느껴지는 게 약하다…? 남은 힘이랑 뭔가 관련이 있는 건가?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진 않았는데… 시나브로 줄어서 그런가? 이건 언니랑 산주 것도 한 번 제대로 봐야 하겠네-
이한령: 혹시나 걱정돼서 말하는 건데- 너희 막 뭐 지리산에서 이상한 짓 한다든가 그러는 거 아니지? 내가 구슬 두 개나 깨먹어 봐서 그래. 구슬 힘 너무 쓸 짓은 안 하는 게 좋다고. 그냥 소소하게 리모컨 손 안 쓰고 조작한다든가 막, 그럴 때나 쓰고 그러면서 오래 가는 게 좋지.
한건영: 한령아, 걱정할 거 없다니까. 딱히 일 벌리고 그런 거 없어. 너도 우리가 뭐 이상한 일 크게 벌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할 거 아니야?
이한령: 그래. 나도 어디 잡혀갈 일 한다고는 생각 안 하거든? 그런데 얘기를 좀 듣다 보니까 그래도 정확히 뭔 일 하는지는 알아야겠어. 다른 두 사람은 그렇다 쳐도 아직도 직장 못 잡은 산주까지 그렇게 바빠서 그냥 만나서 술 한 잔 하는 시간도 조율해야 할 일은 뭐고, 너 말고 다른 두 사람도 구슬 힘을 너만큼 쓸 일은 또 뭔지. 난 진짜 너희 셋은 나같이 큰일 안 겪었으면 좋겠다고.
한건영: 그래, 그러면 말이야- 차라리 직접 보여줄게.
이한령: 오, 좋아- 잠깐, 뭐?
한건영: 언니! 산주야! 예정보다 좀 이르긴 한데 한령이한테 보여줄 때가 된 거 같거든? 어떻게 생각해?
양쪽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산주가 먼저 반응한다.
박산주: 그래, 그럼. 어차피 알게 될 건데 굳이 숨긴답시고 우리 사이에 이상한 의심 만드는 것보다야 낫겠지.
박현: 야, 그런데 지금 나진이도 훤히 듣고 있잖아. 한령이야 그렇다 치는데…
한건영: 한령아.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게 지금 대충 뭔 소리인지 알겠지. 넌 어떻게 생각해, 나진이 한 명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이한령: 아니, 그냥 그럴 거면 다 헤어진 다음에 따로 연락을 걸든가 하면 될 걸 왜 이래? 술 취했다고 판단력이 이렇게 흐려져?
한건영: 좀 몽롱한 건 맞는데- 그래도 판단 자체는 정상이야, 진짜. 나는 나진이 정도면 믿을 만하다고 본다. 언니나 산주한테 말해도 똑같을 거야. 한령이 너하고 나진이 두 사람 의견만 맞으면 다 돼. 어때, 나진이도 같이 데려가 볼까?
김나진: 대체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그렇게 얘기하니까 궁금해지잖아. 난 보고 싶어.
이한령: 돌겠네… 그럼, 우리 다섯이서만 보자. 다른 사람 없이 보러 가는 거다.
박산주: 뭐 따로 부를 사람 누구 있다고… 내일이나 모레에 시간 되면, 그때 바로 보는 거로 하자.
이하는 6월 9일, 다섯 사람이 모여 SCP-452-KO의 실체를 확인하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행동과 대화는 김나진의 가슴에 부착된 소형 카메라로 촬영하였다. 박현이 운전하는 차량이 다섯 명을 태우고 함양군의 산골 도로를 달린다.
김나진: 꽤 구석진 데까지 가네… 지금 얼마나 온 거예요?
박현: 이제 다 왔어. 한 5분에서 10분 사이쯤? 그래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지?
이한령: 처음 보는 길이네… 대체 이런 데에서 뭘 하는 거야?
박산주: 보면 안다니까. 어차피 시간 남는다면서, 느긋하게 구경해.
차가 외따로 있는 작은 건물 앞에 주차한다. 김나진이 차에서 내리며 이를 자세히 관찰한다. 건물은 화강암 외벽으로 두른, 대략 3m 높이에 75평방미터 남짓한 면적의 작은 단층 구조다. 이윽고 박현의 인도에 따라 내부로 들어선다. 달리 공간 변칙의 징후는 없으며, 화장실을 제외한 공간은 미닫이문으로 주방, 창고, 거실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다섯 사람이 거실에 앉는다.
이한령: 완전 처음 보는 곳이네. 여긴 직접 산 거야?
박산주: 샀다기보단, 처음부터 우리가 지었지.
김나진: 생각보다도 더 본격적이구나. 이러니까 뭐가 튀어나올지 더 기대되는데?
이한령: 긴장만 만땅이다…
한건영이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온갖 잡동사니를 뒤지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박현: 아니, 건영아! 왜 이리 찾는 데 한 세월이야. 마지막에 쓴 사람이 정리 잘 하라고 했잖아.
한건영: 마지막에 쓴 거 산주라니까? 맨날 정리 안 하는 거 누구밖에 없는데. 아이고! 산주 미친 새끼야. 금속은 다 아래에 두랬잖아! 머리 깨지겠네.
한건영이 불평을 내뱉으며 물건을 뒤지고 3분 있어, SCP-452-KO를 들고 창고에서 나온다. 이때 SCP-452-KO는 가로×세로 크기가 50×35cm에 달했으며, 원목 형태를 유지한 현재와는 달리 겉이 광택 나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한령과 김나진 모두 해당 광택에서 세 사람이 소유한 백색 구체를 연상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박현: 이야, 그런데 우리 셋이 여기에 같이 있는 건 제법 오랜만이다.
김나진: 아, 평소에는 다같이 모이는 일은 잘 없어요?
박현: 우리 다 사회인이잖아. 게다가 여기가 어지간히 구석진 것도 아니고. 게다가 굳이 다 모여 있어야 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기도 하니. 솔직히 혼자 있을 때는 진짜 넓다 느껴졌는데 이렇게 다섯이나 있으니까 좀 좁은 것 같기도 하고?
이한령: 그나저나, 건영이가 꺼내온 저거는 대체 뭐야? 상자 같긴 한데, 꽤 얇네.
한건영: 내가 이거 꺼내온 거랑 색깔까지 본 이상 한령이는 이미 짐작했을 텐데, 우리가 만든 거야 이거.
이한령: 대체- 어디다 쓰는 건데 이거?
박산주: 백문이불여일견. 직접 보여줘야지. 마침 만들다 만 게 있는데 잘 됐네.
박산주가 창고에 들어가 잎사귀로 만들어진 염소 모양 개체를 꺼낸다. 이내 SCP-452-KO를 열고 잎사귀를 조금 꺼낸 다음, 염소의 두 뿔 형태를 성형해 해당 개체에 붙이고 완성했음을 표한다. 완성된 염소 개체는 기름(김나진의 증언으로는, 콩기름으로 추정됨.)을 생성해내 핥는 동작을 하나, 실제로 기름을 빨아들이진 않는다.
박산주: 아- 역시 아직은 좀 미묘하네.
김나진: 미묘하고 자시고, 나 지금 아무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몰래카메라 같은 거야? 아니면 나도 모르는 첨단 기술 같은 거?
박현: 나진아, 너니까 특별히 보여주는 거다. 이거 진짜 막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든가 그러면 안 돼.
박현이 자신의 구체를 꺼낸다. 이윽고 구체에서 빛이 나며, 김나진과 제작자들이 처음 만났던 시점의 상황을 재현해 보인다.
김나진: 이건- 어차피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봤자 물증 없이는 그냥 미친 소리잖아요.
박현: 그러니까 말하지 말라고.
김나진: 그런데 진짜로, 이거 보여주는 건 제가 아예 처음인 거예요? 신기하긴 하니까 불만 가지는 건 아닌데- 진짜 보여줘도 괜찮으신 거예요?
박현: 우리도 말이야, 처음부터 알고 다녔던 건 아니라고. 한령이가 있어서 알게 된 거지. 한령이가 왜 우리한테 이런 걸 알려줬겠냐, 믿고 맡겨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우리도 너를 믿어. 비밀 잘 지켜주고, 이게 어떤지 평가해줄 거라고!
김나진, 이한령: 평…가?
이 순간, 염소 개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갑자기 기름에 불이 붙는다. 불길은 순식간에 치솟아, 다섯 명 모두의 주의를 끈다.
한건영: 으악- 불, 야, 불!
박산주: 어- 소화기! 내가 가져올 테니까 빨리 다 나가!
박산주를 제외한 전원은 건물 밖으로 탈출하며, 3분 뒤 박산주도 재채기를 해대며 건물에서 나온다.
이한령: 와- 이거 대체 뭐였어? 갑자기 불이 왜 붙어?
한건영: 우리도 몰라. 이런 사고는 한 번도 없었는데. 야, 산주 너 뭐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야?
박산주: 그럴 리가 없잖아… 요새는 건들 것도 달리 없었는데. 그래도 사고 난 것 치고는 별 피해 없어서 다행이다.
박현: 그건 그런데… 그래도 불에 탄 부분 복구는 해야 하잖냐. 당분간은 좀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한령이하고 나진이랑 차분하게 얘기하려 했는데, 이래서야 원. 나진아, 당분간은 진짜로 여유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 있어?
김나진: 좀 많이 궁금하긴 한데… 그럴 여유는 없어 보이네요. 기다릴 수 있어요.
다섯 사람은 박현의 차를 타고 헤어져 각자 집으로 향한다.
이후 김나진과 이한령은 위의 내용을 그대로 재단에 보고했으며, SCP-452-KO의 관리를 어떻게 할지 논의가 이어졌다. 초반에는 대상을 우선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그 수단을 논의했지만, 제작자들이 탈취에 대비해놓았을 것이라는 가설이 제시되며 신중론이 고개를 들었다. 건물 주변이나 건물에 감시 장치를 설치하는 것 또한 난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김나진과 이한령을 SCP-452-KO 담당 인원으로 배정했다. 두 사람은 대상의 특성과 제작자들의 목적, 잠재적인 위협을 상세히 조사하며, 자진하여 맡은 일이기 때문에 재단이 손해를 보는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에 동의했다.
6월 20일에 제작자들이 두 사람에게 따로 연락을 해왔다. 제작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했으나, 그다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는 아래 참조.| 질문 | 대답 | 해석 |
| 만드는 게 무엇인가? | 좀 복잡하다. 일단은 본 것처럼 나뭇잎으로 만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그런 정도다. | 이 부분에 거짓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작자들이 SCP-452-KO를 직접 만들었음을 감안하면 의도적으로 대부분 정보를 생략한 채로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
| 도움을 안 받고 셋이서만 만들었나? | 도움이라기엔 애매하지만, 구체 힘을 좀 썼다. 그것 말고는 우리가 직접 했다. | 한건영의 구체가 힘을 예상보다 덜 발휘하는 이유를 확인했다. 다른 두 사람도 비슷할 것으로 보임. |
| 평가는 무슨 뜻인가? 뭘 해주길 바라나? | 어려울 것은 없다. 사고가 난 것에서 보듯이 미완성 상태인데, 안전성이나 유용성 같은 걸 평가해주는 것이다. | 맥락을 보면, 굳이 이한령이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어도 제작자 측에서 근시일 내에 SCP-452-KO의 정보를 밝히고 협조를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나진까지 동참시키는 것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는 불명. |
| 구체를 이용했다고는 해도, 대체 어떻게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인가? | 비밀이다.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해서 그건 알리기 힘들다. | 김나진과 이한령이 따로 질문한 내용이지만, 둘 다 거의 똑같은 대답을 받았다. |
| 유용성을 평가한다는 거면, 뭔가에 쓰겠다는 뜻인가? 혹시 그게 정상 사회에 노출될 만한 일은 아닌가? | 우리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진정한 다음 차분히 대화하자. | 이한령은 정상 사회에 노출될 경우의 수, 노출되고 나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2,000 자 이상 써내며 제작자들에게 매우 큰 불안감을 표했다. 제작자들이 이 내용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답하진 않았지만, 이한령이 언급한 내용 모두 걱정을 거둬도 된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
| 평가는 어떻게 해주면 되나? | 어려울 건 없다. 우리가 2주에서 한 달 사이 간격으로 그동안의 개선 사항과 실험 과정을 녹화한 영상을 보내줄 것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추가적인 개선점 등을 봐달라. | 지금까지 대화의 맥락으로 봤을 때 상술한 것처럼 이한령에게 평가를 요청할 것이었음은 거의 확실한데도, 해당 시점에서는 제작자들이 준비한 영상이 따로 없었다. 6월 9일의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 |
| 다른 건 제쳐두고, 이런 걸 만드는 이유가 있긴 한가? | 사실 시작하게 된 건 우연에 가까운데, 계속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미안하지만 정확히 뭔지는 못 말해준다. | 여러 가설이 제시됐지만, 제작자들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은 해당 가설들 모두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
상기한 대화를 마치고 나서 이한령과 김나진 모두 SCP-452-KO의 제작 과정을 평가하는 것에 동의했다. 제작자들은 6월 30일에 첫 영상을 보냈다. 영상의 내용과 이후 나눈 대화는 아래 첨부한다.
영상이 시작한다. 앞서 말한 건물의 거실에서 박산주가 카메라 앞에 서 있고, 옆에는 SCP-452-KO가 있다.
내가 처음이네… 다른 사람한테 보여준다 하니까 조금 긴장되는데. 자 그럼- 계획명 나뭇잎 놀이, 시작.
박산주가 SCP-452-KO를 열고 잎사귀를 꺼낸다. 박산주는 잎사귀를 이리저리 주무르며, 익숙한 듯한 손놀림으로 팔다리가 뭉툭한 인간형 객체를 만들어낸다. 만들어진 객체는 미러볼을 소환해 머리 위에 띄워 천천히 회전시킨 다음, 팔다리를 물결처럼 구부렸다 펴는 것과 함께 제자리에서 돌거나 앉았다 일어나는 등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춤은 4분 동안 계속되다가 미러볼이 갑자기 떨어져 객체를 납작하게 짓누르면서 끝난다.
대충 설명도 했고, 저번에도 한 번 보긴 했으니까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지? 그래도 처음이니까 자세히 설명할게. 우린 나뭇잎 놀이로 부르고 있어. 작명 가지고 뭐라 하진 마, 방금 말한 것처럼 그냥 계획명이니까.
박산주가 SCP-452-KO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때 물체의 특성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때는 제작자들이 만들 수 있는 객체를 범주화해 일일이 구체적인 행동을 하나하나 집어넣었으며, 객체가 무력화되고 난 뒤 SCP-452-KO 위에서 문구가 발생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나뭇잎이랑 질감이 똑같았거든? 그리고 엄청 튼튼하고. 그래서 손으로 주무르는 게 안 되고 조금 특수한 가위랑 테이프를 따로 넣어서 그걸로 오려붙이면서 만드는 식이었어. 당연히 뒤지게 불편했는데, 건영이가 지금같은 발상을 딱 낸 거야. 확실히 바꾸니까 확 편해지긴 하더라. 그러니까, 소소하게 아이디어 같은 거 빌려주면 좋겠어. 꼭 매번 억지로 짜내달란 것까진 당연히 아니고. 오늘은… 그래. 처음이니까 뭐 아이디어 같은 건 괜찮고, 그냥 감상 정도만 말해줄래? 다른 사람이 볼 때 어떤 느낌인지 아는 것도 만드는 데 도움 될 것 같아.
영상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한령과 김나진은 영상을 본 직후 박산주에게 연락을 건다. 하단 참조.
박산주: 오, 다 봤네. 그럼 어땠어?
김나진: 알고 나서 보니까 진짜 신기하긴 하네. 그러고 보니까 행동은 직접 설계한다며, 저번에 불 났던 건 뭐야?
박산주: 그건 있지, 우리도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넣는 건 아니고 틀만 딱 맞춰놓고 어느 정도 자율에 맡기는 거라서 그래. 변수에 변수가 절묘하게 겹쳐서 그만… 일단 우리가 안전 장치 따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 뭐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줘도 좋아.
이한령: 안전 장치, 안전 장치라…
박산주: 뭐 괜찮은 생각 있어?
이한령: 아직은. 조심해서 해, 이번에야 그냥 불이어도 다음에는 뭔 일일 줄 알고. 구슬도 여차할 때 충분히 쓸 수 있을 만큼만 써두고.
박산주: 암, 안전이 제일이지. 뭔 짓을 해도 불보다 더 큰 사고는 절대 안 나게 할 거야. 그럼 오늘은- 그냥 소개하는 정도니까 이 정도로 하고, 다음 달 한… 15일 이후? 정도에 새로운 영상 보낼 것 같아.
김나진: 그래? 그럼 그동안은 바빠서 따로 연락하든가 만나는 건 좀 힘든 거야?
박산주: 누나랑 건영이는 그럴 텐데.. 나는 어- 뭐, 너희가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연락하면 받을 수 있는 상태일 걸. 언제든 만난다고까지는 못 하는데 연락은 뭐, 부담 없이 언제든 환영이야.
첫 평가가 있고 박산주는 거의 매일같이 김나진과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중간중간 개발 근황을 묻는 말에는, 영상을 보낼 때가 아니면 안 된다며 대답을 거부했다. 한편 한건영과 박현은 일이 바빠 연락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앞서 이한령이 말한 것처럼 박현은 막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에서의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시점이라 시간이 있었을 텐데도 연락을 할 수 있는 빈도가 한건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재단이 이를 수상하게 여겨 조사를 시도했지만, 수상한 점을 찾진 못했다. 다만 구체의 작용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에 박현은 집중 감시 대상에 들었다. 다음 영상은 7월 17일에 왔으며, 이번에도 박산주가 보냈다. 아래 참조.
영상이 시작한다. 박산주가 서 있고, 옆에 SCP-452-KO가 있다.
자- 기다렸지? 그럼 그동안 뭘 했는지 말해야지. 일단 안전 장치를 넣었어. 하나 만든 걸로 보여줄게.
박산주가 창고에 들어가 SCP-452-KO-1로 만든 객체 하나를 꺼낸다. 객체는 건축용 크레인 형태로, 박산주는 끝 부분에 철구를 흉내낸 듯 둥글게 뭉친 나뭇잎을 단다.
이걸로 생길 만한 위험이면 역시 이리저리 움직여대면서 박살내다 사람도 치는 거겠지… 자, 다 만들었어. 한 번 봐볼까?
객체가 살짝 흔들리고, 주변에 나무로 된 블럭이 건물 형태로 쌓아져 생겨난다. 객체는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블럭들을 무너뜨려 간다. 블럭은 객체 방향으로 무너져 객체에 손상을 더해 간다. 이때 박산주가 철구가 움직이는 경로 중간에 손을 놓는다. 손에는 약간 멍이 들어 있고, 반창고도 조금 둘러져 있다. 철구가 박산주의 손에 닿기 직전에 제자리에서 튕겨져 올라 피해 블럭을 무너뜨린다. 가장 높게 쌓인 블럭이 무너지면서 객체를 덮쳐 완전히 뭉게며 활동이 끝난다.
박산주: 짠- 봤지? 이렇게 사람이 감지되면 피하는 거야.
박산주가 노트북을 켜 문서 하나를 띄우고 설명을 이어간다.
박산주: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간단한데, 이것저것- 논리적인 연산 구조를 조금 넣었어. 기본 전제를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로 놓고, 이 '피해'가 뭐인지 정의하는 식으로. 이거 저번에 불 난 거는 엄연히 말하면 직접적인 피해는 안 줬잖아? 그것도 사람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안 된다~ 식으로 되는 거지. 그런데 이렇게 하려니까 모순이 또 문제가 되더라고. 또 이 모순되는 상황이 너무 많아서 일일히 지정하자니 안 되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지 좀 아이디어를 주면 좋겠어.
영상이 끝난다. 이한령과 김나진이 이번에도 바로 박산주에게 연락을 건다.
이한령: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이거 영상 언제 찍은 거야?
박산주: 사흘 전에 찍은 거 편집한 거야.
이한령: 그래? 그러면 거기- 지금 만드는 데에 있는 건 아니겠네.
박산주: 응. 어차피 영상 한 번에 안 찍어질 거 아니까 굳이 즉석에서 편집하고 보내고 연락하고 할 시간까지는 안 고려하지. 나 손 봤잖아, 영상 찍다가 그렇게 된 거라니까.
김나진: 진짜 열심이네… 나호 씨는 걱정 안 하대?
박산주: 하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서툴다고 구라 치고 있지.
김나진: 너같이 돈 걱정 할 일도 없는 애가 손 다칠 만한 일을 굳이 한다고 퍽이나 믿겠다.
박산주: 놀랍게도 이상하게 생각하질 않더라. 자랑거리라곤 몸 건강한 것밖에 없는데 뭘 더 하겠냐면서… 반박을 못 해서 더 슬퍼.
김나진: 뭘 그렇게까지 그러냐? 내가 좀 빠른 거야. 넌 대학 졸업도 아직 안 해놓고 뭘 그리 걱정을 하냐. 그보다 잠깐,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 나 안 그래도 안전장치 좀 생각해둔 거 있는데 이거 얘기하다가 그대로 잊어먹을 뻔.
박산주: 아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볼까.
김나진: 나뭇잎 놀이가 일단 빚고는 완성했다고 말을 해야 움직이잖아? 이거면 주변 자극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맞지? 그렇다면 아예 위험을 피하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오는 정보에 기반해서 위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행동하지 않도록 하는 거지. 이 정도면 애초부터 누구 다치게 하려고 만드는 거 아닌 이상 의도치 않게 사람한테 피해 가는 사고 정도는 안 생길 거라 보는데.
박산주: 그런데 단순히 정해진 신호에 반응하는 거랑 아예 자극 자체를 해석해서 상황을 파악하게 하는 거는 차이가 좀 있지 않아? 그리고 이게 컴퓨터 장치 같은 것도 아니라 인공지능을 설계한다든가, 학습용 정보를 바로바로 넣는다든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한령: 구슬 써서 만드는 거잖아. 그러면 오히려 더 쉬운 거 아니야?
박산주: 이건 우리가 완전히 처음 해보는 거잖아. 한 번 물꼬 틀면 물흐르듯 되는 건 맞아.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해본 적 없는 건 다른 기반도 없다는 거라… 조금 더 구체적인 안만 있으면 해볼 만은 할 것 같은데. 뭐 더 생각 좀 해보자.
세 사람은 잡담을 섞으면서 20분 간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SCP-452-KO의 안전장치 구상이 적당히 마무리된다.
박산주: 역시 다른 사람들이랑 논의를 하니까 더 잘 되네. 이 정도면- 틀 잡는 데 2주에서 한 달 정도면 되겠다. 틀만 한 번 잡으면 일사천리니까 안전 장치는 이제 한 달 정도면 완성된다 보면 되겠네. 이야- 진짜 고마워. 역시 너희랑 같이 하면 뭔 일이든 잘 되는 느낌이야.
이한령: 그래-? 그럼 나중에 안전 장치 완성되면 영상이 아니라 아예 직접 보여줄 수 있어? 우리가 만드는 거 지원하는데 한 번 쯤은 직접 만져보고 싶다 야.
박산주: 일단 누나하고 건영이랑 얘기는 해야할 텐데, 못 할 거야 없지. 적당히 됐을 때 계획 잡자.
8월 12일에 안전 장치가 거의 다 만들어졌으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기존에 하던 대로 원격으로 영상을 보내고 평가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이유를 물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8월 15일에 이한령은 재단에 일방적인 통보만을 남기고 홀로 제작자들의 건물로 조사를 갔다 6시간 후 복귀했으며, 김나진과 대화를 나눴다. 아래 참조.
김나진이 턱에 손을 괴고 기다리며, 곧 이한령이 들어온다. 김나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미소짓는다.
김나진: 진짜 참- 보통이 아니시네요.
이한령: 오늘 아신 거면 좀 늦지 않았어요? 전 언제나 세 사람이 최우선이었는데요.
김나진: 아이, 진짜. 진짜로 위험한 상황이었으면 어쩌려고요? 최소한 멀리서라도 상황 지켜볼 인원 정도는 대동하고 가야지, 이러시면 저도 같이 징계 먹는다니까요?
이한령: 받고야 말죠. 어떤 징계든 저희 일을 방해하는 수준으로는 못 할 거 아니에요. 지금 나뭇잎 놀이, 아니 SCP-452-KO에 배정된 인원이 둘밖에 없는데. 솔직히 여기서 제가 존나 잘 해서 바로 나뭇잎 놀이 가져왔으면 징계는 커녕 포상감 아니에요?
김나진: 못 가져오셨잖아요-
이한령: 에이 참, 그래도 정보 정도는 가지고 왔어요.
김나진: 그래요, 일단 도대체 거기서 뭔 일 있었나부터 들어 봅시다. 내 팔자야… 기껏 SCP 전담 한 번 해보나 했더니 이렇게 시말서 각이 튀어나오냐.
이한령은 김나진의 말을 거의 무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한령: 그럼 일단, 재단에 연락 한 줄 남기고 바로 택시 타고 거기까지 갔어요. 적당히 산기슭에서 내리고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그때 갔던 때만큼 올라가도 건물은 커녕 숲길이 끝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 거예요. 얘네가 준비한 첫 보안책일 텐데 이거, 지리산 힘맥 찾던 그 시절에 거점 숨기던 방식하고 완전히 똑같더라고요. 그럼 저는 간단히 뚫고 갈 수 있죠. 그래서 건물까지는 별 일 없이 가고- 자물쇠는 안 잠겨 있더라고요. 안에 들어가보니까 비어 있었고. 아마 입구도 다른 보안 장치가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저는 따로 지정해 놓아서 지나갈 수 있었다든가. 어쨌든 딱 이때쯤이면 있겠지? 하고 직접 얘기 한 번 해보러 간 거였는데 아니었죠. 그래서 그냥 여기서 연락을 걸까 하다가 딱 눈에 나뭇잎 놀이- 아, 452-KO가 보이더라고요.
김나진: 있었어요? 그런데 왜 안 챙기셨어요?
이한령: 한 번 만져나 보려 했는데 만져지지가 않더라고요. 그게 또다른 보안책이었겠죠. 이건 본 적 없는 경우라 머리에 물음표 띄우고 손 넣다 뺐다 반복하고 있으니까 전화가 왔어요, 건영이한테. 바로 뭐 하고 있는 거냐더래요? 그냥 훔치는 것만 막는 게 아니라 누가 그러고 있는지까지 안다니, 그런 건 배운 기억이 없는데도 대단하지 않아요?
김나진: 변칙이랑 별 관련 없이 살아오던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것까지 익히다니 정말- 아니 잠깐만요, 그때 있었던 일 말하다가 왜 거기로 새요?
이한령: 이 정도면 쩌는 거죠. 중요한 건 그걸 어디에다 쓰냐는 거겠지만… 어쨌든 건영이한테 솔직히 말했죠. 대체 뭐가 그리 바쁘길래 나를 못 부르는 건지 궁금해서 직접 얘기하러 왔다. 이 시간쯤 되면 있을 줄 알고 왔는데 없어서 기다릴까 하다가 한 번 나뭇잎 놀이 좀 만져보려 했다. 하니까 뭐라던 줄 아세요? 무단침입한 건 둘째 치고, 차도 없으니 택시 탔을 텐데 뭔 여기까지 오는 데 그렇게나 쓰냐면서… 막 돌아가는 택시는 자기가 부른다면서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는데, 건영이도 참-
김나진: 그럼… 별 일 없이 그냥 돌아오신 거예요? 그렇다기엔 여섯 시간이나 비는데-
이한령: 그럼요, 흥미로운 일이 있었죠. 일단 건영이 말에 당장 돌아갈 생각은 없고, 시간 나면 얘기나 좀 하자고 대답했어요. 뭔 얘기 하고 싶냐던데, 꽤 난처해 보이더라고요. 바쁜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빙빙 돌리면서 핵심은 피해갈 게 뻔하니까 나뭇잎 놀이 그동안 만진 거 얘기나 하기로 했죠. 건영이도 제가 일부러 주제 돌린 거 아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뭐 내용은 평범하게, 나진 씨가 말씀하신 거 반영해서 능동적으로 주변 맥락 파악해서 위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같은 식요.
김나진: 이것도 충분히 흥미롭긴 하네요. 한 달 정도라고 직접 말은 했어도 그게 그렇게 빨리 될 만한 게 아닌데요. 게다가 시간이 썩어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런데 이 내용이 평범한 거면 얼마나 더 흥미로운 게 있는 거예요?
이한령이 팔짱을 끼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이한령: SCP-452-KO를 직접 만지고 써봤죠. 꽤 놀랍게도 건영이 쪽에서 먼저 제의해 왔어요. 제가 응하니까 바로 나뭇잎 놀이가 만져지더라니까요? 딱 전부터 팔만 딱 만들면 이게 움직이긴 할지, 움직이면 어떻게 움직일지 좀 궁금했거든요. 바로 해봤죠. 나뭇잎은 뭐라 해야 하나, 만지기만 하면 그냥 나뭇잎인데 좀 모양 만드려고 주무르고 그러면 찰흙처럼 말랑거리더라고요.
이한령은 사람의 팔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이어 말하며, 중간마다 딱히 영양가는 없는 잡설을 더했다.
이한령: 다 만드니까 팔꿈치 쪽에 로켓 분사구 같은 게 생기더니, 막 곧게 날아다녔어요. 그러면서도 저나 물건은 절묘하게 피하고요. 벽에 부딪힐 때마다 방향을 바꾸면서 점점 빨라지더니, 거의 잔상이 생길 속도가 됐을 때 딱 벽에 부딪히고는- 만화에서나 볼 법하게 폭발하면서 나사 하나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여기까지야 뭐 그냥 궁금한 거 좀 확인한 수준이라 평범한데 여기부터가 진짜예요. 그냥 궁금한 거 하나 확인했다- 하고 있었는데 건영이가 나뭇잎 놀이 상자를 한 번 보라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나뭇잎 놀이 위에 홀로그램같이 문구가 떠올라 있는 거예요. 무한으로 즐기는 팔 날리기 쇼~ 나뭇잎 놀이는 별도! 이렇게. 뭐냐고 물으니까 건영이도 모른대요.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까 갑자기 생겨났는데 어떻게 없애는지도 모르겠대요. 전혀 예상 못한 일이야 변칙이니까 흔한 일이라지만, 나뭇잎 놀이가 이름도 그렇고 하는 것도 그렇고 좀 장난감 같은 느낌이잖아요. 어떻게 딱 거기에 맞게 이런 게 생겼대요.
김나진: 딱 맥락을 파악하는 기능을 넣었는데 거기 맞춰서 생긴 거면 그게 원인일지도요? 위험한 변화가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일단 제작자들도 예상을 못하는 변화가 막 생기는 거면 좀 내비두기 그러네요. 언제 뭔 일이 생길 줄 알고… 차라리 이번에 가져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이한령: 나뭇잎 놀이 실시간 위치 파악 정도야 할 수 있었겠죠… 어떻게든 들고 올라 해도 바로 그 못 만지게 하는 기능만 키면 끝이고.
김나진: 그럼 일단은 여기서 더 진행하는 걸 자제하도록 좀 해야겠네요. 문제 생기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세 사람이 제일 먼저 피해 보는 거니까. 그나저나, 여섯 시간이면 거기 가서 팔 하나 만들고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좀 더 남는 것 같은데 뭐 더 없어요?
이한령: 나뭇잎 놀이도 나뭇잎 놀이인데, 어쨌든 거기 간 본 목적은 대체 왜 세 사람이 저희를 거기 불러오려다 말았냐잖아요? 그래서 건영이랑 통화를 적당히 좀 이어 가면서 거기 안을 뒤졌어요. 그러다 전부터 쭉 거기 있었던 노트북이 보이더라고요. 이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죠. 바로 열어 보니까 딱 비밀번호도 없-긴 한데 파일들에는 또 걸어놨더라고요. 아쉬운 대로 그냥 뭔 파일들 있나 좀 뒤졌는데 제목이 수상한 것들이 좀… 있었어요. '정보 교환'이라든가, '다음 접촉 계획' 이런 게. 그래서 일단은 급한대로 그렇게 특히 수상한 제목 가진 파일들부터 제 폰에 복사해 놨어요. 이 파일 내용만 알면 나뭇잎- SCP-452-KO를 확보하는 데 더 진전이 있을지도 모르죠.
김나진: 그런가요… 결과만 따지면 그럭저럭 넘어가긴 했네요. 아슬아슬하게 징계는 피하겠다.
이한령: 그럼 다 잘 됐네요.
김나진: 아니, 저만요. 이한령 씨는 바짓가랑이 붙잡을 틈도 없이 튀어나가셨잖아요. 대가를 치르셔야지.
이한령: 으아-
파일들의 잠금을 모두 해제하는 데에는 사흘이 걸렸다. 내용은 45K기지 정보부에서 종합 및 정리했으며, 서버 담당자인 유한비가 개인적인 대화를 겸해 김나진에게 직접 정보를 전했다. 이한령은 당시 징계의 일환으로 정보 접근이 금지된 상태였으며, 징계가 끝난 뒤 김나진에게 정보를 전해들었다. 대화 내용은 아래 참조.
위치는 제45K기지의 직원 휴게실. 유한비의 요청으로 김나진 외 인원의 출입을 금지해둔 상태였다. 김나진이 소파에 눕듯이 앉다가 유한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허리를 곧게 핀다.
유한비: 에이, 왜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편하게 안 있으면 잡아먹기라도 하나.
김나진: 이게 공식 보고서에 올라갈 거라면서… 그럼 꽤 민감한 정보가 많단 거야?
유한비: 이한령 씨가 어릴 때 벌인 대모험 관련 내용이 정말 많더라고. SCP-452-KO랑 직접 관련된 정보는 아니기도 하고, 꽤나 보안 수준이 높은 정보기도 하고. 그나저나 나진이, 자세 잡는 게 그런 거 때문이었어-? 너 한심하게 보일 만한 건 보고서에 안 실릴 거야, 걱정 마.
김나진: 선배 어떻게 믿고, 전에 변칙 개체 기록에 나 벌벌 떨면서 개 추하게 울던 거 그대로 보고서에 써서 올린 게-
유한비: 누나.
김나진: 무슨- 호칭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유한비: 넌, 내가 아직도 너한테 보통 감정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뭐야, 그 박현 그 사람은 누나라고 잘만 불러대면서 왜 나는-
김나진: 누님이라고 부르는데 왜 멋대로 기억을 조작해? 극존칭이라고, 극존칭. 존경심을 담아 부르는. 원래라면 존댓말 했을 거 어색하게라도 반말로 바꿔 부르는 것도 겨우 했는데 호칭은 좀 봐줘.
유한비가 정색한 표정을 풀고 미소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유한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잡설은 조금 뒤로 미루고 업무 얘기부터 할까? 방금 말한 것처럼 파일에 힘맥 찾던 때 관련 내용이 많다고 했었잖아, 그럼 그게 무슨 뜻일 것 같아?
김나진: 나뭇잎 놀이 만드는 데- 옛날 경험을 활용하고 있다.
유한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긴 하네. 그런데 아니야. 굳이 질질 끌 것도 없으니까 바로 알려줄게. 정답은 '옛날에 싸웠던 놈들과 다시 싸울 때를 대비하고 있다'야.
김나진이 놀라 말을 하려는 찰나에 유한비가 말을 가로챈다.
유한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양반들이 직접 싸우려는 건지까지는 아직 몰라. 쇠똥구리들 있잖아? 그것들이랑 정보를 나누고 있더라고. 쇠똥구리 이 자식들 미련하기 그지없다니까. 10년 전에 더 생생한 정보 얻을 기회 있었는데 신경도 안 썼다는 거잖아? 나같으면 다음에 찾으러 나설 때 대비해서 뭐뭐 있었나 다 물어보고 기록했을 텐데. 구체 그것도 딱 그런 거에 최적화돼 있고. 그래서 일단은- 두고 보자는 쪽이야. 지금은 정상 사회에의 노출보다는 그 세 사람이 지리산 벌레들에 휘말리는 쪽이 더 걱정되고. 아, 그래. 잠깐 귀 좀 대봐.
유한비가 김나진의 귀에만 들릴 정도의 소리로 말한다. 김나진은 잠깐 놀라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김나진: 그렇구나… 그러면 왜 그러는지 대충 알겠네. 그런데 왜 굳이 귀에다 대고 이야기해?
유한비: 일종의- 사내 복지? 별 거 아녀 보여도, 이거 지금은 기밀이다.
김나진: 직원도 아닌 사람한테 무슨… 그냥 깜짝 놀라는 반응 보고 즐기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유한비: 어허, 그럴 때 도파민이 최대로 분비되는 거라고. 그리고 이대로라면 현상 유지만 잘 해도 SCP-452-KO를 수월하게 격리할 수 있게 될 거니까- 이 정도면 허용 범위야.
김나진: 그렇다면야 그것까지는 내가 상관할 거는 아니겠네. 그럼 일단은 하던 대로 쭉 하면 되는 거지?
유한비: 응, 안전이 최우선이야. 너희 두 사람한테 달린 거니까 잘 신경 쓰라고. 에휴, 그래도 그렇게 혼났는데 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튀어나가진 않겠지.
김나진: 그나저나 진짜 걱정되네. 10년 전에가 어쨌는가는 몰라도 요새 지리산 벌레들 움직임은 그다지 안전하다고는 못 하는데. 내가 못 살아. 이한령 씨 진짜 미리 이야기 좀만 나누고 갔어도 거기에 달 감시 장치 하나 정도는 챙겨갈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유한비: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고민해도 어쩔 수 없지. 그보다는… 지금부터 하는 일이 더 중요한 거잖아, 그렇지?
유한비가 김나진에 밀착한다. 김나진은 어색한 듯 보이지만, 밀어내진 않는다.
김나진: 나 부담스러워. 어찌 됐든 일하는 중인데 조금은 자제해 주라.
유한비: 에이, 그래도 차기 기지 이사관보 딸이 이렇게 라인에 설 기회를 주는데, 그런 의미에서라도 조금 받아들여주면 안 되겠어?
김나진: 기지 이사관보? 수현 아저씨 말고?
유한비: 그 양반은- 역시 넌 아직은 잘 모르는구나.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에 쭉 있든, 아니면 다른 기지로 가든 그럴 걸. 그러니까- 넌 그거는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지 말지 그것만 딱 정해봐.
김나진: 안 돼. 지금 우리 말하는 이거 공식 문서에 다 올라가는 거 아니야. 나중에 진짜 단 둘이서만 있을 수 있을 때, 그때 같이 밥이나 먹든 뭘 하면서 놀든 하자.
유한비: 그래- 흐. 앙증맞기도 해라. 이래서 좋다니까. 뭐든 하는 거, 약속이다? 딴말 해도 안 들을 거야.
이한령은 8월 22일에 업무에 복귀했으며, 누구에게든 위험할 수 있는 행위와 공적인 상황에서의 단독 행위를 절대 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받았다. 이후 기록은 아래 접어놓은 부분에 정리하였으며, SCP-452-KO를 확보하게 된 결정적 사건의 기록만을 확인할 인원은 접어놓은 부분을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2023년 3월 15일 제45K기지의 감시소 다수가 변칙 개체들의 비정상적인 활동을 보고했다. 그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평소 접점이 없던 개체끼리 같이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거나 움직임이 적던 개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성질 측면에서 명백한 이상성을 보였으며, 재단은 조사에 나섰다.
유한비가 탁자 가운데에서 의자에 기대 몸을 뒤로 기울인 채로 앉아 있다. 이윽고 이한령과 김나진이 들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탁자 양쪽에 놓인 자리에 앉는다.
김나진: 엥, 선배? 수현 아저씨 온다 그러지 않았나?
유한비: 뭐겠냐, 짬이지. 뭐 정보 모으고 관리하는 게 우리 부서 일은 맞긴 하지만. 너랑 한령 씨도 대략적인 상황 얘기를 듣기야 했을 텐데, 나는 좀 더 자세히 말해 주려고 여기 있는 거야. 그래, 이한령 씨 반가워요. 서로 얼굴 맞대는 건 처음이죠?
이한령: 네, 저도 반가워요- 선배라면은 그쪽이 그… 사람인 거 맞죠?
유한비: 네?
이한령: 작년에 4박 5일 휴가 때 같이 갔다던 그-
김나진이 헛기침으로 말을 끊는다.
유한비: 나진이가 원치 않네요. 다음에 말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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